전라남도의 남서단 무안반도 남서쪽에 자리하며 1004개의 섬으로 이뤄진 신안군을 바로 앞에 두고 있다. 북동쪽으로는 무안군, 남쪽으로는 영암군을 바라본다. 영암군을 사이에 두고 영산강이 흘러가며 지금은 하굿둑이 설치되어 있다. 구도심 중심부에는 해발 228m인 유달산, 동쪽에는 입암산(121m),북쪽에는 양을산(156m)·대박산(156m)·지적봉(189m) 등으로 둘러 있고 남쪽은 영산강 하구에 면해 있다. 목포의 최고 자랑 중 하나인 유달산은 노령산맥의 끝자리에 해당하며 남도의 개골산이라는 별칭을 지닌 기암괴석의 산으로 1351년 고려 충정왕 3년에 봉수대가 설치된 곳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 군량미가 쌓여 있는 것처럼 위장했다는 일명 노적봉이 있으며, 영산강· 삼학도와 함께 이곳 사람들의 시정(詩情)을 돋우는 아름다운 경관을 갖추고 있다. 도심지의 중심에 산이 있다보니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언덕지대가 나타나기도 한다. 영산강 하구 주변에는 13개의 섬이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경치를 펼칠 뿐 아니라 해일이 생긴다 해도 자연 방파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하여 목포를 천혜의 양항으로 기능하게 하였고 이는 목포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19][20]
그러나 역사적으로 현재 목포의 지리는 대부분 간척에 의한 매립지로 이루어졌다. 삼학도를 비롯해 하당신도시, 북항 일대는 갯벌을 모두 개간한 것이며 인근 영암지역도 많은 매립지가 형성되었다. 과거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현재의 목포역 앞에 개울이 흘러 바닷물이 도시 내부로까지 흘러들어왔다고 한다. 시가지 주변의 영산강 하구에는 연변·북항·대반동·백련동·갓바위해안 등의 간석지가 있다. 이들 간석지는 육상으로부터의 계속적인 퇴적과 바닷물의 유입횟수가 줄면서 정착하게 된 염생식물 덕분에 퇴적물의 집적과 간척이 용이해져 농경지·주택지·공장부지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 밖에도 고하도, 눌도, 달리도 등 6개의 유인도와 7개의 무인도를 포함하고 있다.[20]
총 면적 50.08km2이며 일반대지가 21.7%, 전답이 24.5%, 임야가 25.7%, 기타 28.1%를 차지한다.
한편, 집중 호우로 큰 홍수가 났을 때에는 바닷물이 영산포까지 침범하였으나 영산강하굿둑 설치 후 영산포지역 피해는 해소된 반면, 목포권역의 수위가 높아져 피해를 늘렸다. 특히 2004년 7월 4일에 시작된 7호 태풍 민들레는 목포에 많은 피해를 입혔다. 오늘날까지 영산강하굿둑 개선사업에는 정부와 학자 및 시민단체들 사이에서는 많은 논란이 끊이지 않은 상태이다.[21][22] 2010년부터 영산강 하구둑 배수갑문 확장 공사가 진행 중이다.
기후
목포기상대가 1904년 3월 주요 5곳과 함께 설치된 이후 3월 25일 목포에서 국내 최초로 기상관측을 실시했다.[23] 1904년 3월 25일의 날씨는 구름이 낀 가운데 최저 3.4도, 최고기온은 8.4도였다고 한다.
2006년 기준 강수가 1년중 121일, 흐림이 98일로 강수일이 많은 편이다. 맑은 날은 66일에 해당하지만 최근 대한민국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목포지역은 전국에서 가장 일조량이 높은 곳으로 인근 신안군과 함께 새로운 태양광발전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24] 황사의 경우 평균 10일로서 서울, 인천의 11일과 비슷한 편이다.[25]
목포는 온난 습윤 기후(쾨펜의 기후 구분 Cfa)에 속한다. 하계에는 해양성, 동계에는 대륙동안형으로 두 기후가 중첩되어 나타나기에 기상 관측에 있어 의의가 높은 지역에 해당한다. 눈이 내리는 날은 년간 37일, 영하인 날은 60일이며 겨울철에는 돌풍이나 기습적인 눈보라가 자주 발생한다.[26] 이는 대륙성고기압 확장시 대한민국 서해안으로 기류가 타고 내려와 바로 만나는 지역에 목포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 7월 4일에 시작된 7호 태풍 민들레로 시작된 집중호우는 목포에 시간 당 64mm라는 100년 만의 기록적인 호우로 큰 피해를 입혔다.
시의 위치상 중국발 미세먼지가 통과하는 황해를 바로 만나는 지점에 있다. 이에 시는 각 동 주민센터를 중심으로 6개의 주요 미세먼지 측정 및 전파체계를 확립했다.[27]
목포의 기후
월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년
평균 최고 기온 °C (°F) 6.1
(43.0) 7.8
(46.0) 12.0
(53.6) 17.8
(64.0) 22.3
(72.1) 25.7
(78.3) 28.3
(82.9) 30.1
(86.2) 26.7
(80.1) 22.0
(71.6) 15.2
(59.4) 9.0
(48.2) 18.6
(65.5)
일 평균 기온 °C (°F) 1.7
(35.1) 2.9
(37.2) 6.7
(44.1) 12.3
(54.1) 17.3
(63.1) 21.4
(70.5) 24.8
(76.6) 26.1
(79.0) 22.2
(72.0) 16.6
(61.9) 10.2
(50.4) 4.4
(39.9) 13.9
(57.0)
평균 최저 기온 °C (°F) −1.5
(29.3) −0.7
(30.7) 2.8
(37.0) 8.1
(46.6) 13.3
(55.9) 18.1
(64.6) 22.3
(72.1) 23.2
(73.8) 18.8
(65.8) 12.5
(54.5) 6.3
(43.3) 0.8
(33.4) 10.3
(50.5)
평균 강수량 mm (인치) 33.2
(1.31) 42.4
(1.67) 60.0
(2.36) 69.3
(2.73) 89.2
(3.51) 173.1
(6.81) 236.7
(9.32) 192.6
(7.58) 147.5
(5.81) 46.9
(1.85) 43.4
(1.71) 29.3
(1.15) 1,163.6
(45.81)
평균 강수일수 (≥ 0.1 mm) 11.6 9.5 9.7 8.4 9.4 10.4 13.5 12.4 8.9 6.5 8.4 10.2 118.9
평균 상대 습도 (%) 68.7 69.0 67.8 68.0 72.5 77.8 83.7 80.3 75.8 69.2 67.6 68.7 72.4
평균 월간 일조시간 143.3 154.5 184.1 204.9 216.3 171.3 158.0 204.5 179.5 209.4 166.4 143.2 2,135.4
출처: 대한민국 기상청[28]
행정
목포시장
목포시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민선 1~2기(33~34대)
지방자치제가 시작되면서 민선 1기 시장으로 1971년부터 목포문화방송 대표이사를 맡던 권이담 당시 목포시장이 1995년 7월 1일 취임했다. 2선에 성공하면서 2002년까지 목포시장직을 수행했다. 인터뷰 및 본인이 직접 쓴 소논문 등에서는 과거 목포의 영화를 되찾고자 하는 소망을 표명했다. 권이담 시장은 영산강 오염으로 인해 목포시에서 주암댐의 물을 끌어쓰는 등 물문제가 커지자 이에 대한 해결과 전남도청 이전 계획 성사에 주력했으나 임기 내 전남도청 이전에 대한 확실한 계획을 도출하지는 못했다.[29] 2000년 목포항에서 신의주로 가는 밀가루 600t을 지원하기도 했다.[30]
민선 3~5기
2002년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권이담 시장은 민주당 지도부와 갈등을 빚었다. 공정 경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무소속 출마를 감행하겠다고 입장을 밝혔으나 지원서에 "경선 불공정 시 분담금 1500만원을 돌려달라"는 단서를 달아 목포지구당의 후보등록 무효처리 결정을 받게 된 것이 화근이었다. 이에 후보등록 불공정 시비가 붙으면서[31] 법원까지 오른 논쟁은 법원이 4월 30일 가처분 신청을 기각함에 따라 권이담 시장 측의 민주당 탈당 및 지방선거 출마 포기로 정리됐다.[32]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전태홍 시장은 목포 YMCA, 목포상공회의소 회장 등을 역임한 사람으로서 전남도청 이전이 확정됨에 따라 신항과 대불산업단지 활성화 중점 육성을 주요 현안으로 구체화했다.[33] 그러나 2005년 1월 13일 그가 갑작스레 사망하면서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됐다.[34] 4.30 보궐선거에서 정종득 후보가 개표 결과, 총 유효투표수 6만4천736표중 2만9천269표(45.2%)를 차지하면서 당선됐다. 그는 목포를 동북아 환황해권 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관광문화 도시로 육성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35][36] 2005년 당시 목포의 최대 현안 사업이던 목포대교 건설 사업의 사업비가 130억으로 삭감되자 정 시장과 시의원이 기획예산처 방문과 설득으로 120억 원의 추가 사업비를 배정받는 데 성공했으며 2005년 8월 말 기획예산처가 주관한 균특회계 평가에서 우수시로 선정돼 5억 원을 사업비로 수상했다.[37] 원도심 개발사업소를 2005년 출범시킨데 이어 "빛의 도시"로 육성하고자 원도심에 빛의 거리를 조성했다.[38]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도심 활성화가 지지부진하자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13개의 특화거리를 상호별로 지정하여 운영하는 한편 임대료를 지원하는 방안을 시행하고 있다.[39]
2006년 지자체선거에서 2선에 성공해 정종득 시장은 37대 목포시장으로서 역임했었다. 2007년 5회 풀뿌리 경영 대상에서 대상을 수상[40] 하는 한편 2009년 초에는 한국관광클럽이 제정한 '제1회 한국관광대상'에 경북 울릉군과 함께 선정되어 대상을 수상했다.[41]
두 번의 임기 동안 계속적으로 실시된 원도심 개발사업에 대해서는 인근 정비와 지원이 진전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상권 활설화로는 이어지지 못한데다 영업지원금 지원에 대한 세입자와 건물주간 마찰이 생기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아 목포시의 행정 방안에 대해 태도 변화와 인구 유인 시스템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역언론의 지적이 일고 있다.[42][43]
39대
한편 지난 2008년 지자체 선거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박지원이 목포시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했음에도 민주당 후보를 지원하지 않고 이를 묵인했다는 측근의 고발로 파문이 일기도 했다 .[44][45]
2009년 목포권 시민단체들은 목포시의 업무추진비 투명성 제고를 위해 시민들에게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법원이 2년 만에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주면서 정보공개 심의위원회가 목포시장이 임명한 위원들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 책임 있는 보고를 하라는 비판을 받았다.[46] 이어 2011년에는 시장이 직접 극심한 교통 체증에 대한 민원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공무원과의 비상 연락조차 확보되지 않아 공직 기강 해이에 대한 질타가 이어진 바 있으며[47] 목포시가 시 화장장 입찰을 계획하는 가운데 화장장 입찰 선정에 대해 측근의 업체가 선정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48]
2014년 6월 4일 지방선거에서 전통적인 야당의 텃밭인 목포시장 자리에 최초로 무소속 후보인 박홍률 후보가 당선되었다.[49] 이는 목포시 유권자 중 10만 3218명이 투표에 참여한 결과, 3만 5951표를 얻어 3만 1532표를 얻은 이상열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4419표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시청
목포시청은 1949년 8월 15일 문을 열었으며 현재 6개 관리국과 22개동을 관할하고 있다.[50] 기획관리국, 주민복지국, 관광경제국, 도시건설국의 4개국과 목포시보건소, 교육문화체육사업단, 시의회사무국, 상하수도사업단, 도시개발사업단을 거느리고 있다. 기타사업소로는 각종 환경관리소 및 목포자연사박물관이 있다.[51] 상하수도사업단과 도시개발사업단은 별관과 해안동 기업은행 건물에 있으며 수도세 회계 처리와 원도심 개발 사업을 각각 관리한다.
목포시 용당1동 양을로 203에 있으며, 4층으로 된 본관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목포시의회 오른쪽으로 민원동이 있다. 주차장을 너머로 별관에는 상하수도사업소가 자리하고 있다. 시청 건물을 중심으로 오른편에 KBS 목포방송국, 목포마리아회고등학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