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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한국 한자: 韓服, 문화어: 조선옷)은 고대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대한민국의 고유한 의복이다... 한복은 오랑캐 옷이 아닌 기모노나 한푸 등 이웃나라들의 전통 옷차림과는 달리, 저고리와 치마, 즉 위 아래옷이 분리되어있어, 형태상으로 구분된다. 현대의 한복은 보통, 조선시대에 입었던 한복과 유사성이 크며 명절이나 격식을 갖추는 자리에서 입는 경우가 많다. 개량한복은 생활의 편리함을 강조하고 있어 20세기 동안 그 외형이 여러 변화를 겪었다. 한복도 의복이므로 기성복처럼 아주 빠르지는 않지만, 시대의 흐름과 대중의 요구에 따라 색과 소재, 특징 등을 새롭게 접목하며 이러한 시도는 여러 한복디자이너에 의해 현재에도 시도되고 있다. 대다수의 평민은 흰색 옷을 즐겨 입었으며 한복의 기본 구성인 치마와 저고리, 바지 등은 변치 않고 오랜 세월 동안 기본 골격을 유지하고 있다. [3] 오랑캐 옷으로써 한복에 나타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기본적으로 활동성을 중시하며 딱 붙는 옷이 아니다. 또한 천 자체를 보면 직선형이지만 몸에 입을 경우 곡선이 살아나게 도와주는 미적 특징도 나타나는데 이는 주머니가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사-한복의 시초는 삼국시대 한반도사람들의 복식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21세기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인 한복의 골격인 저고리, 바지, 치마라는 기본구조는 그대로 이어지되 길이나 폭, 형태 등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였다. 폭에 관해서는 넓은 바지, 좁은 바지, 발목에 주름 잡혀 좁은 발목 형태의 바지, 넓게 펼쳐진 밑단의 바지 등 폭과 길이가 다채로웠으며 허리 정도의 길이에 오는 저고리는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남녀 구분 없이 입었다.
삼국시대 옷차림
고구려 복식은 양성 모두 저고리가 엉덩이까지 내려왔으며 아래는 바지를 입어 귀부인일수록 바지의 폭이 넓어지는 특징이 있었다. 다만 남자는 저고리와 바지를 입었고 여자는 저고리에 바지나 치마를, 혹은 저고리와 치마를 겸해서 입었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복식과 아주 다르지는 않으나 고구려의 경우에는 좌임, 우임, 합임(양쪽 어느 곳으로 모으지 않고 가운데로 모아 입은 형태) 등 세 종류가 공존하여 나타났고 상투나 자연스럽게 풀어헤친 머리 형태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고구려에서는 양잠이 발달했으며 옷감의 색 또한 다양해 흰색, 검은색, 노란색, 보라색 등이 쓰였다 명주와 무명, 삼베를 이용하여 미적 측면도 추구한 점은 유목 민족과 구분할 수 있다. 또한 고구려인은 항상 전투복과 같은 옷을 입고 다녀 비상사태에 대비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고구려 사람들이 옷의 활동성을 중시했기 때문으로 복식이 뒷받침되었기에 전쟁에서도 능할 수 있었다.
백제의 복식은 다른 예술 분야와 마찬가지로 그 아름다움이 두드러졌으며 고구려보다는 여성적이다. 고이왕 27년(260년)에 정해진 관복의 제도에서는 관복의 색감에 대한 정의가 내려질 정도로 의복이 발달하여있었다. 복식은 고구려와 흡사했으며 공식적이거나 그 중요성이 높을 경우 여인들은 머리 장식을 했다. 남자의 경우 고구려와 비슷하게 포를 넓게 하여 항시 입었던 것은 동일했다. 그 때문에 관모에도 신하들의 직급에 따라 장식 자체가 구분되었으며 임금은 금제, 좌평~나설까지는 은제를 부착하도록 했다.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에 비해 늦게 발전한 만큼 훗날 두 나라와 당나라의 문물을 급속도로 받아들이면서 복식에 대한 개념도 성장했다. 신라 때 전해진 당나라의 복식을 통해 남자 귀족들은 먼저 당나라의 복식을 입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신라가 당의 복식을 들여온 것은 진덕여왕 2년(648)을 전후한 시기로서 당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한 증거가 된다. 신라도 이중적인 복식 제도를 취한 점이 비슷하여 고위층, 귀족들은 당나라의 복식문화를 수용하여 당나라의 옷 형태가 융화되는 한편, 백성들은 기존에 입던 저 고리바지, 저고리 치마의 형태를 입었다. 더군다나 백제와 고구려의 영향에서 동떨어져 있지 않았던 신라는 독자적인 복식을 겸용하여 발달해 나갔다.
조선시대-조선 초, 한복은 소매가 헐렁한 형태로 나타났으며 실례를 보여주는 유물은 박익(1332–1398)의 묘에서 발굴된 벽화이다. 조선은 개국 후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으므로 복식에서도 계층적 신분 질서를 여러모로 규정하여 치마의 경우 조선 전기에 출토된 스란치마는 명나라 시대의 치마와 거의 유사하고 꽃무늬 또한 유사성이 많았다. 그러면서 저고리의 길이는 길어지고 치마는 허리에서 입는 형태여서 폭이 넓어지다가 16세기 들어 저고리는 허리 윗부분으로 그 길이가 짧아졌으며 좀 더 가슴 부분으로 올라갔다. 조선 중기에 나타나는 복식의 특징은 남성과 여성 한복 모두 대체로 등길인가 길어 허리 밑까지 내려올 정도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갈수록 짧아졌다는 점이다. 여성의 저고리는 이러한 추세를 바탕으로 조선 말엽에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길이가 짧아지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 이전에는 좀 더 수치를 크게 입었다면 후기에는 품도 몸에 맞도록 입게 되었다. 또한 저고리가 치맛말기를 가려 주지 못함에 따라 치마와 저고리 사이의 겨드랑이 밑을 가려 주기 위하여, 한 자정도 되는 넓은 띠를 이 부분에 매었다. 이러한 변화로 조선 말엽, 저고리의 길이는 축소화가 진행되는 반면 치마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길어지고 폭도 넓어진다. 그러다 18~19세기에는 종 모양처럼 저고리의 실루엣이 봉긋해지는 형상으로 바뀌게 된다. 오늘날의 한복은 과거부터 이어져 온 한복의 직계이며 조선시대의 것과 흡사하지만 19세기의 한복, 다시 말해 조선 후기의 형태와 가장 비슷하다. 500년 조선 통치하는 동안 많은 변화를 겪어 유행을 타기도 했으며 현재에 이르러 대부분의 한복을 지칭하는 형태로 정착하게 된다.
근현대-일본 강점기에는 소위 신여성들이 짧은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어 개량한복의 시초가 나타났고 한동안 이러한 형태의 복장이 신여성의 복식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게 되었다. 1984년, 한 한복 디자이너가 개량된 한복을 작품으로 발표한 것을 시초로 비슷한 형태가 대중에게 선보이게 되었다. 개량한복은 기존 한복과 달리 저고리의 고름이 착용에 용이하도록 단추로 대체됐고 부피가 큰 치마를 서양식 의복과 접목하여 움직임에 불편함이 없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1960년대까지도 한복을 입은 시민들의 활보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양복과 옷감의 보급이 확산하면서 한복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1970년대 이후 한복은 그 기능이 예복으로 국한되면서 생활보다는 미적인 기준을 강조해 이를 계승하려는 노력과 함께 좀 더 창조적인 면모를 두드러지게 하도록 한복이 변화되었다. 이에 따라 더욱더 원색적이고 라인을 살리는 형태의 한복이 등장했다. 1980년대에는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등을 전후로 해 여러 단체의 한복 입기 운동 전개로 많은 관심을 얻었으며 한복에 대한 재조명이 시작된다. 1996년 문화관광부가 시작한 "한복 입는 날" 행사는 대중의 한복에 대한 관심을 끌어낸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복이 비싸기도 하고 입을 경우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이를 역으로 이용해 한복 대여업체들이 등장하는 것도 새로운 추세다. [83] 좋은 옷을 특별한 날에 입기 위한 소비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업체들이 등장하면서 소비자의 취향을 만족시키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한복을 입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 형태도 단순한 형태가 아닌 창작 한복과 퓨전 한복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기에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하는 데 바람직한 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민족문화의 계승 차원에서 조선옷 가게가 평양 시내와 여러 대도시에 문을 열었으며, 현대민족의상과 전통 복식에 관련한 전시회도 열었다. 그러나 한복이 불편하다는 까닭으로 남자들은 많이 입지 않으며, 여성의 경우 개량조선옷을 입어 편하게 착용한다. 때문에 평상시에는 입지 않고 큰 행사의 경우 대부분이 1벌씩 가진 좋은 조선옷을 꺼내 입는다. 1990년대에는 유행으로 검은 치마에 저고리를 입고 다니기도 했으며, 여전히 혼례식에는 신부가 한복을 입는다.반응형'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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